2005/11/18 05:19
RL.N ovel.
모 동창 사이트의 중개로 모처럼만에 고교 동창들을 만났었
다.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술자리밖에 없는 스물 네 살.
50여명의 급우들 중 스무명 남짓 되는 사람이 모인 자리는 시
끄럽기가 그지없었다.
술기운을 빌어 그 순간만 필요 이상으로 친해져 모두가 화기
애애하던 때, 난 한 녀석만이 구석에 틀어박힌 채 조용히 혼
자 자기 잔을 채우는 것을 보았다. 어렴풋하게 기억이 날 듯
말듯한 얼굴. 누구였었지.. 그때 내 옆에서 끝없이 화통한 웃
음소리를 내며 연거푸 술잔을 비워내던 A가 내 옆구리를 쿡
찌르며 말했다.
"이상우 쟤는 왜 왔데?"
A딴에는 귓속말이라고 한 거겠지만 남들이 듣기에는 충분
히 큰 목소리. 구석에 있던 이상우는 그 말을 듣더니 A와 내
가 앉은 쪽을 향하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. 어쩐지 처량한 미소
로 잠시 좌중을 둘러보던 그는 모두의 시선을 인식한 듯 아까
제 손으로 따랐던 술을 들이켰다. 잔이 술이 다 비워진 상태
로 테이블에 놓여지고 동시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. 휘척대며
가방을 들고 자리를 벗어나는 그에게 여전히 뱃심좋고 생각없
기로 유명한 A는 한 마디를 던졌다.
"상우야! 회비 내고 가야지!!"
하나도 안 웃겼던 A나름대로의 개그는 술취한 동창들에게
는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었고 이상우의 발걸음을 더 빨라지
게 했다. 그렇게 녀석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한동안은 모두들
이야기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좋아라 하며 웃고 즐겼다. 아무
도 이상우의 기분 따윈 관심없는 것 같았다. 마치 그의 부재
가 동창들 전체를 한 마음으로 만들어버린 듯 했다. 이상우가
왕따였다느니 생각이 음침하다거니 고교때부터 해괴했다느
니 하는 말부터 시작해서 걔네 형도 정신병원에 있다더라, 아
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새 장가를 간 탓에 새 엄마와 여덟
살 차이밖에 안난다더라 하는 검증되지 않은 그의 가정사까
지 뒤척거리며 술자리를 참으로 화목하게 만들었다.
그렇게 상우로 인해서 우리의 동창회는 마무리될때까지 즐
거움이 가득 묻어났다.
술이 깨고 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느라 까맣게 잊어버렸
던 상우의 기억은 우리를 5년만에 만나게 해 주었던 모 동창
회 싸이트의 게시판으로부터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.
별이 바람에 스치운다
이젠 .. 쉬고 .. 싶어...
단 두줄의 간단한 내용이었다. 상우의 글 밑에는 해가 지기
전에 가려 했지..부터 시작해서 별이 바람에 스치면 떨어져서
널 덮쳐주는거냐, 쉬고 싶으면 너도 형을 따라 언덕위의 하얀
집으로 가라.. 등 열 개 가까이 리플이 달려 있었다. 어떻게 봐
도 그리 좋게 봐줄 수 없는 내용들이긴 했지만 아마 상우가 이
렇게 많은 호응을 얻은 것은 처음일꺼란 생각이 들었다. 그래
서 난 마지막에 -드디어 왕따를 벗어났구나 축하해 다들 널 이
리도 열렬히 환영해 주잖니? - 라고 달아줬다.
우리의 동창들은 모두 정이 넘쳐 흐른다.
여기서부터는 지금쯤 독자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이다.
상우 녀석은 편안히 쉴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. 7층 아파트에
서의 투신. 직접 내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말에 따
르면 어떻게 봐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.
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일정한 속
도로 주차장을 향해 날던 그는 불행하게도 운이 없었다. 바로
아스팔트에 떨어졌으면 참 좋았을 것을. 하필 지나가던 택배
용 차량 윗면에 부딛혀 버렸다. 당연히 녀석은 그 충격으로 인
해 약 1-2M가량을 다시 지상으로 튕겨올랐다가 떨어졌고, 기
겁을 한 운전사가 내려서 상우를 볼 때까지 녀석은 살아있었
다. 언제나 신속정확한 119가 와서 병원으로 싫고 갈 때 까지
도.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.. 아직도 살아있다. 다만 뇌사라
는 판정을 받은 채. 녀석은 자기 자신의 목숨을 끊은 권리조
차 없었던 모양이다.
해파리가 파도에 휩쓸려 흐느적거리듯 자신의 의사결정과
는 관계없이 흘러온 스물 넷까지의 상우 인생은 아직도 계속
되고 있다.
Epilog.
추후에 이 소식을 들은 A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상우에 대해
서 이야기했다. 그것은 녀석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떤 상태
인가에 대한 궁금증이기는 했지만, 녀석 자체에 대한 그리움
은 아니었다. 다만 A는 술자리에서의 좋은 안주꺼리 하나가
또 생겼다는 그런 종류의 관심일 뿐이었다.
우리의 단합심 강한 동창들은 그런 A를 따라서 모두들 상우
를 그리워했다. 이 얼마나 좋은 결론인가. 상우는 편안히 쉬
고. 우리들은 상우를 생각하고. 모든 것은 잘 되어가고 있다.
상우의 별이 아직도 바람에 스치듯 쉬고 있을런지는 모를 일
이지만...
2003-2004년즈음에. By RL.N.
다.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술자리밖에 없는 스물 네 살.
50여명의 급우들 중 스무명 남짓 되는 사람이 모인 자리는 시
끄럽기가 그지없었다.
술기운을 빌어 그 순간만 필요 이상으로 친해져 모두가 화기
애애하던 때, 난 한 녀석만이 구석에 틀어박힌 채 조용히 혼
자 자기 잔을 채우는 것을 보았다. 어렴풋하게 기억이 날 듯
말듯한 얼굴. 누구였었지.. 그때 내 옆에서 끝없이 화통한 웃
음소리를 내며 연거푸 술잔을 비워내던 A가 내 옆구리를 쿡
찌르며 말했다.
"이상우 쟤는 왜 왔데?"
A딴에는 귓속말이라고 한 거겠지만 남들이 듣기에는 충분
히 큰 목소리. 구석에 있던 이상우는 그 말을 듣더니 A와 내
가 앉은 쪽을 향하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. 어쩐지 처량한 미소
로 잠시 좌중을 둘러보던 그는 모두의 시선을 인식한 듯 아까
제 손으로 따랐던 술을 들이켰다. 잔이 술이 다 비워진 상태
로 테이블에 놓여지고 동시에 그는 벌떡 일어났다. 휘척대며
가방을 들고 자리를 벗어나는 그에게 여전히 뱃심좋고 생각없
기로 유명한 A는 한 마디를 던졌다.
"상우야! 회비 내고 가야지!!"
하나도 안 웃겼던 A나름대로의 개그는 술취한 동창들에게
는 폭소를 터트리게 만들었고 이상우의 발걸음을 더 빨라지
게 했다. 그렇게 녀석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한동안은 모두들
이야기거리가 생겼다는 것에 좋아라 하며 웃고 즐겼다. 아무
도 이상우의 기분 따윈 관심없는 것 같았다. 마치 그의 부재
가 동창들 전체를 한 마음으로 만들어버린 듯 했다. 이상우가
왕따였다느니 생각이 음침하다거니 고교때부터 해괴했다느
니 하는 말부터 시작해서 걔네 형도 정신병원에 있다더라, 아
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새 장가를 간 탓에 새 엄마와 여덟
살 차이밖에 안난다더라 하는 검증되지 않은 그의 가정사까
지 뒤척거리며 술자리를 참으로 화목하게 만들었다.
그렇게 상우로 인해서 우리의 동창회는 마무리될때까지 즐
거움이 가득 묻어났다.
술이 깨고 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느라 까맣게 잊어버렸
던 상우의 기억은 우리를 5년만에 만나게 해 주었던 모 동창
회 싸이트의 게시판으로부터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.
별이 바람에 스치운다
이젠 .. 쉬고 .. 싶어...
단 두줄의 간단한 내용이었다. 상우의 글 밑에는 해가 지기
전에 가려 했지..부터 시작해서 별이 바람에 스치면 떨어져서
널 덮쳐주는거냐, 쉬고 싶으면 너도 형을 따라 언덕위의 하얀
집으로 가라.. 등 열 개 가까이 리플이 달려 있었다. 어떻게 봐
도 그리 좋게 봐줄 수 없는 내용들이긴 했지만 아마 상우가 이
렇게 많은 호응을 얻은 것은 처음일꺼란 생각이 들었다. 그래
서 난 마지막에 -드디어 왕따를 벗어났구나 축하해 다들 널 이
리도 열렬히 환영해 주잖니? - 라고 달아줬다.
우리의 동창들은 모두 정이 넘쳐 흐른다.
여기서부터는 지금쯤 독자 모두가 예상했던 그대로이다.
상우 녀석은 편안히 쉴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. 7층 아파트에
서의 투신. 직접 내 눈으로 본 건 아니지만 사람들의 말에 따
르면 어떻게 봐도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.
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일정한 속
도로 주차장을 향해 날던 그는 불행하게도 운이 없었다. 바로
아스팔트에 떨어졌으면 참 좋았을 것을. 하필 지나가던 택배
용 차량 윗면에 부딛혀 버렸다. 당연히 녀석은 그 충격으로 인
해 약 1-2M가량을 다시 지상으로 튕겨올랐다가 떨어졌고, 기
겁을 한 운전사가 내려서 상우를 볼 때까지 녀석은 살아있었
다. 언제나 신속정확한 119가 와서 병원으로 싫고 갈 때 까지
도.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.. 아직도 살아있다. 다만 뇌사라
는 판정을 받은 채. 녀석은 자기 자신의 목숨을 끊은 권리조
차 없었던 모양이다.
해파리가 파도에 휩쓸려 흐느적거리듯 자신의 의사결정과
는 관계없이 흘러온 스물 넷까지의 상우 인생은 아직도 계속
되고 있다.
Epilog.
추후에 이 소식을 들은 A는 여전히 큰 목소리로 상우에 대해
서 이야기했다. 그것은 녀석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어떤 상태
인가에 대한 궁금증이기는 했지만, 녀석 자체에 대한 그리움
은 아니었다. 다만 A는 술자리에서의 좋은 안주꺼리 하나가
또 생겼다는 그런 종류의 관심일 뿐이었다.
우리의 단합심 강한 동창들은 그런 A를 따라서 모두들 상우
를 그리워했다. 이 얼마나 좋은 결론인가. 상우는 편안히 쉬
고. 우리들은 상우를 생각하고. 모든 것은 잘 되어가고 있다.
상우의 별이 아직도 바람에 스치듯 쉬고 있을런지는 모를 일
이지만...
2003-2004년즈음에. By RL.N.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