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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인레테
연락처 : rainlethe@rainlethe.com 영혼을 잃어버리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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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5/11/18 05:11 RL.N ovel.
두 개나 세 개쯤 담배를 빼 물고 나면, 이런 기분이 들어. 처

음에는 혀끝에 타르가 느껴져. 마치 까만색 가루로 된 기름이

혀끝에서 번져나가는 것 같아. 그리고는 흔히 말하듯 연기가

목구멍 속으로 들어와. 자고 일어났을 때 목이 칼칼해져서는

본의 아니게 허스키해진 목소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.

연기는 목에서 걸려져서는 나쁜 성분들만 먼지덩어리처럼 뭉

쳐서 폐로 흡수되는 거야. 니코틴과 그 외 여러 성분들이 서서

히 내 공기펌프를 썩어가도록 만드는 거지. 시나브로 기분나

쁘고 짙은 피멍을 들게 하고 있다고나 할까.. 이런 내 말이 너

에게는 잘 와닿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, 내겐 단순한 인체모형

이미지가 아니라 털이 곤두선 고양이의 감각처럼 와닿는 거라

구.


그런데도 왜 담배를 피느냐고? 글쎄.. 혹자는 습관성이라고

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

고도 하지. 심지어는 커피맛을 좋게 느끼기 위한 조미료 정도

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. 그런 말들도 다 일리가 있긴 해. 하

지만. 적어도 나에겐 담배는 이런 의미야.


프랑스의 작가 중에 사드라는 사람이 있어. 새디즘과 마조히

즘이라는 말의 시초가 된 사람인데,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

은 누구에게나 가학적인 성향과 피학적인 성향이 있다는 거

야. 쉽게 말하면 공격하고싶어하는 성향, 그리고 공격받고 싶

어하는 성향이 있다는 거지. 즉 인간은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

욕망이나 괴롭힘을 당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말이야.

난 담배를 피움으로써 그 두가지 마음을 다 만족할 수 있다고

생각해.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것이나 괴롭힘 당하고 싶

어하는 것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면 되는 거니까. 그러니까

담배를 피워 자신의 몸을 괴롭힘으로써 희열을 느낀다고나 할

까..


작년이던가. 한 코메디언이 담배로 인한 폐암으로 죽었을

때 언론은 참 시끄러웠었지. 모처럼만에 큰 기사꺼리를 잡았

잖니? 그 때 유행하던 신문기사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

를 본 적이 있었어.


『한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전 국민에게 담배를 끊으라는 것

은 말도 안된다. 물론 끊고 싶은데 의지가 부족하여 힘겨워하

는 사람이야 도와줘야 마땅하겠지만, 담배 한 모금에 인생 쓴

맛을 묻고 내뿜는 연기에 삶의 희망을 보는 사람들, 즉 진정

한 애연가들에게 낙을 뺏어가지는 말라.. 』


꽤나 장문의 글이었는데, 대충 요지는 위와 같았어. 어때? 맞

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?


외제 담배중에 '말보로' 라는 게 있지. MARLBORO라고 쓰

는데, 일설에 따르면 이 글자는


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s Over

의 약자래. 남자는 항상 끝난 낭만에 사랑을 기억한다.. 는 건

데 여기에 얽힌 얘기가 또 있어. 집안의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

과 헤어져야 하는 남녀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. 여자가 가야

할 시간이 되자 남자는 담배 한가치 피울 때까지만 함께 해 달

라 했고, 여자는 울면서 승낙했지. 하지만 그 당시엔 종이를

말아서 피우는, 필터가 없는 담배뿐이어서 담배는 너무 빨리

타 들어갔던거야.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고 여자에게 영원한

안녕을 고한 남자는 결국에는 필터가 있는 말보로를 만들었다

는, 마치 박효신의 노래같은 이야기. 뭐 그건 고도의 상술인

지 혹 작은 얘기가 크게 부풀려진건지, 혹 누군가가 지어냈는

지는 모를 일이지만. 사랑하는 여자를 마지막으로 보내면서

피는 담배. 과연 맛이 어땠을는지..


많은 영화와 광고에서의 멋진 이미지만이 아니더라도, 이건

이 것 자체만으로도 느껴볼 가치는 있는 거라구. 인디언들이

약초로 쓰던 걸 가져와서는 팔만큼 팔아놓고는 마약이라 규정

지어버린 웃기는 나라 말 따윈 신경쓰지 말고. 어때? 이 사연

있는 담배?"


녀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담배를 내밀었다.

MARLBORO라고 쓰여진 담배였다. 멋진 붉은색 케이스에 담

겨 있었고, 필터 부분은 시가 색이었다. 난 무언가 홀린 듯 그

가 주는 담배를 받았다. 터무니없이 긴 말이었고, 다 알아들

은 것도 아니며, 그렇다고 해서 친한 사이도 아닌 녀석과 나

의 관계에서는 조금 기묘한 일이었다. 적어도 녀석과 나는 방

금 전에 길거리에서 만났을 뿐인 사이인 것이다. 어쨌든 난

알 수 없는 기분에 휩쓸려 담배를 받아 불을 붙였다. 몇 번의

콜록거림. 약간의 어지러움을 동반한 끝에 난 한 가치를 다 피

웠다.


녀석은 내가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발로 비벼 끄는 순간까

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는, 내 어깨를 몇 번 툭 툭 치고

는 자신의 오토바이로 갑자기 출발해버렸다. 순식간에 멀어져

버린 그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멍하니 쳐다보

는 일밖에 없었다. 어쩐지 만화같은 일이었다. 난 녀석의 이름

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. 게다가 난 녀석에게 단 한마디의

말도 하지 않았다. 심지어는 대답조차도.


어찌됐든 난 이름도 모르는 녀석 덕분에 담배를 배웠고, 조

금씩 늘어서는 이젠 주머니 속에 여분의 담배를 가지고 있지

않으면 불안해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.


난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빼 물다가 말보로의 붉은 케이스를

보면 녀석이 생각나곤 했다. 다시끔 그때의 일을 떠올릴 때마

다 점점 의문점만 늘어나서 물음표가 내 대뇌속을 헤집고 다

니는 바람에 난 녀석과 만난 지 꼭 일년이 지난 후에야 그에

대한 생각을 조금은 옅게 할 수 있었다. 이제 그때 기억의 잔

해는 내가 거의 항상 입에 물고 다니는 말보로의 케이스를 제

외하고는 녀석에 대한 생각이 옅어질 때 쯤이었다.


그런데 오늘 꼬박 일년이 지난 오늘 녀석을 만난 것이다. 난

내 차 안에서 예의 그 말보로를 입에 문 채 신호등의 신호를

기다리는 중이었는데, 내 옆에 어디선가 본 듯한 오토바이가

다가왔다. 녀석이었다! 반가운 마음에 차의 클랙션을 울리자

녀석은 썬그라스를 조금 아래쪽으로 내리고는 날 쳐다보았다.


"와! 오랜만이야!!"


너무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던 것이 조금은 그에게 당황스러

웠는지 그는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나를 쳐다보았

다.


"누구..세요??"


의외의 말. 녀석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. 게다가 일년

전과는 다르게 존댓말이라니. 하긴 이미 일년이라는 꽤 긴 시

간이 지났기도 했고, 나에게만 이상한 일이었을 뿐 그에게는

그런 일이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. 너무 많은 사람을 대하다

보니 날 기억 못할 수도 있지..난 그렇게 이해하고는 일년전

의 일을 대충 설명했다. 내 설명을 듣던 그는 그때서야 날 기

억해 내는 것 같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.


"아.. 제가 아르바이트 할 때 만났던 분이신가보죠??"


아르..바이트?? 그건 아닌 것 같은데..? 녀석은 날 상대로 뭔

가를 팔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건을 홍보한 것도 아

니다.


"아니 .. 아르바이트..는 아니고.."


"하핫. 제가 말보로 사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마주치신 것 아

니에요? 그것 참.. 전 당연히 아시고 계신 줄 알았는데.. 그건

그냥 아르바이트였어요. 말보로사의 홍보 쇼 같은 거죠. 은연

중에 말보로를 뇌리 속에 심는 거에요. 그 증거가 손에 들고계

신 말보로네요. 그 당시엔 비흡연자를 흡연자로 만든다고 해

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서둘러 조기마감했던 행사였는

데... 후훗. 그 홍보 의외로 효과가 좋았나보네요. 말보로를 들

고 계시는 걸 보면"


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.. 이게 무슨 소리인가.. 머릿속에

말보로와 녀석이 했던 말과 목소리와 오토바이의 엔진 도는

소리와 내 어깨를 두들기던 감촉이 마구 헝클어져 담뱃재처

럼 하얀 담배연기속에 침재하고 있었다.


내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것은 말보로의 담뱃재가 내 손목

에 떨어져서였다. 어느샌가 신호등은 파란 불로 바뀌어있고,

녀석은 출발해 버린지 오래였다. 뒷차가 빵빵대는 소리를 들

으며 간신히 차를 출발시킨 내게 남은 건, 이제는 필터밖에 남

지 않은 말보로 담배뿐이었다..


2002. 11. edit 03.07.20. By RL.N.
posted by 레인레테